강원도 태백시에 위치한 정암사와 그 중심 유적인 수마노탑은 한국 불교문화의 심오함과 자연 속 수행 전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유산입니다. 특히 수마노탑은 국보 제332호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높으며, 산사의 정취와 더불어 깊은 종교적 상징성을 지닌 곳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정암사의 역사, 수마노탑의 특징, 그리고 태백산 불교문화 속 그 의미를 상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정암사, 태백산 속의 수행 도량
정암사는 신라시대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입니다.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 자장율사는 중국 당나라에서 불경과 진신사리를 가져와 국내에 불법을 널리 전파하는 데 힘썼습니다. 그 중 중요한 수행지로 선택된 곳이 바로 태백산 정암사입니다. 정암사가 위치한 태백산은 예로부터 우리 민족의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졌으며, 불교에서도 중요한 영산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깊은 산 속에 자리한 정암사는 인간과 자연이 만나는 경계에서 수행자들에게 최고의 수행 환경을 제공해왔습니다. 정암사는 사찰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진신사리를 모시기 위해 세운 이 사찰은 이후 한국 불교계에서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로 꼽히며, 불교 신앙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특히 정암사는 일반적인 사찰 구조와 달리 중심 법당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사찰의 신앙 중심이 법당이 아닌, 수마노탑에 있기 때문입니다. 즉, 수마노탑이 정암사의 ‘법신불’ 역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점은 정암사를 더욱 독특한 사찰로 만드는 요소이며, 불교 신자들에게는 더욱 신성한 장소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수마노탑, 불심이 깃든 국보의 상징
수마노탑은 정암사의 중심에 위치한 석탑으로, 국보 제33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수마노’라는 이름은 인도 마노산에서 유래한 ‘수마노보석’을 의미하며,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자장율사가 이곳에 불사리를 봉안하며 쌓은 탑이라 알려져 있습니다. 수마노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따르되, 일반적인 석탑 구조와는 다른 독특한 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전체 7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돌을 다듬는 방식이나 비례에서 당대 석조 기술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특히 특이한 점은 탑신이 점차 위로 갈수록 좁아지면서도, 각 층의 균형감과 안정성이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이 탑은 일반 대중에게 단순한 문화재를 넘어선 의미를 갖습니다. 바로 자장율사가 모셔온 진신사리가 탑 안에 봉안되어 있다고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수마노탑은 단순한 유물이 아닌 살아 있는 ‘법신불’로 여겨지며, 예불 대상이 됩니다. 많은 불자들이 탑 앞에서 삼배를 드리며 기도를 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수마노탑은 자연 지형을 그대로 활용하여 축조되었기에, 주위 풍광과 탑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가을이면 단풍이 물든 산자락과 어우러져 하나의 풍경화처럼 펼쳐지며, 겨울 설경 속 수마노탑은 마치 무상의 진리를 상징하듯 신비로움을 더합니다. 탑 주위에는 전각이 아닌 소박한 제단과 돌계단만이 존재하는데, 이는 곧 이 공간이 ‘인공적인 꾸밈’보다 ‘진정한 수행’을 중시하는 도량임을 반증합니다. 특히 이곳은 불자가 아니더라도 조용한 명상과 사색을 원하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장소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태백산 불교문화와 정암사의 정신성
태백산은 지리산, 오대산, 설악산과 함께 한국 불교의 4대 산중 수행지 중 하나로 꼽힙니다. 특히 이 산은 고산지대와 맑은 공기, 울창한 숲이 어우러진 환경 덕분에 오랫동안 수행자들의 이상적인 수도처로 기능해왔습니다. 정암사와 수마노탑은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으며, 불교의 정신성과 실천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정암사에서는 매년 다양한 불교 행사가 개최되며, 특히 수마노탑을 중심으로 한 ‘적멸보궁 순례길’은 많은 불자들이 참여하는 신행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 길을 걷는 순례자들은 단순한 등산이나 탐방이 아니라, 마음을 비우고 참선과 기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정암사의 불교문화는 외적인 화려함보다는 내면의 수행과 정신 수양에 초점을 둡니다. 실제로 사찰 건축이나 장식도 매우 간결하며, 중심이 되는 법당이 존재하지 않고 수마노탑에 직접 예불을 드리는 구조는 이러한 불교적 철학을 잘 드러냅니다. 현대인들에게 정암사와 수마노탑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닙니다. 번잡한 도시의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호흡하고, 내면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 명상의 장소로 다시 조명받고 있습니다. 특히 1시간여의 산길을 걸어 도착한 후 마주하는 수마노탑의 정적인 기운은, 짧은 순간이지만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울림을 전해줍니다. 이처럼 태백산 정암사와 수마노탑은 불교의 깊은 철학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마음이 만나는 교차점에 있는 공간입니다. 그 안에는 수천 년 이어져 온 믿음과 수행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정암사와 수마노탑은 단순한 사찰과 탑을 넘어, 한국 불교의 역사와 정신성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장소입니다. 태백산의 자연과 어우러진 이 신성한 공간은 누구에게나 마음의 평안을 전해줍니다. 삶에 쉼이 필요하다면, 정암사와 수마노탑을 향한 순례길을 걸어보세요. 내면의 울림이 있는 진정한 여행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